Date: 8-9-18 예레미야 36:8-32 그들의 죄악
- 주인
- 2018년 8월 9일
- 3분 분량
One Verse: 렘36:10절, "<바룩>은 주님의 성전으로 들어가서, 모든 백성에게 예레미야가 한 주님의 말씀을 기록한 [두루마리]를 낭독하였다. 그가 낭독한 곳은 서기관 사반의 아들 [그마랴의 방]이었고, 그 방은 주님의 성전 '새 대문' 어귀의 위 뜰에 있었다."

왕과 백성에 대한 마지막 경고(렘34-38장): 유다 왕 <여호야김>의 악행
두루마리에 기록한 여호와의 말씀(36:6)
1절의 "유다의 요시야 왕의 아들 <여호야김> 제 4년"은 BC 605년을 가리킨다. 이 연대는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갈그미스에서 애굽 군대를 물리친 운명적인 해를 가리킨다. 예레미야는 이미 말로 전한 <예언의 말씀들>을 [두루마리 책]에 기록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는데, 이렇게 한데 모아둔 <심판의 말씀>을 통해서 지금이라도 유다 가문이 정신을 차릴지 모르기 때문이다.
4절 "바룩은 예레미야가 불러 주는 대로, 주님께서 그에게 하신 모든 말씀을 두루마리에 기록하였다." <예언>을 <문서> 형태로 적어 놓음으로써 예레미야가 아니더라도 다른 사람이 그 말씀을 백성의 귀에 들려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성전에 더이상 들어갈 수가 없었는데, 이러한 이유는 성전의 제사장들의 적개심 때문이었다.(렘26:7-9, 20:1-6)
9절 "요시야의 아들 여호야김이 유다 왕이 된 지 5년째 되는 해 아홉째 달에, ....<중략> 주님 앞에서 금식하라는 선포가 내렸다." 공식적인 금식일의 선포는 위협적인 정치 상황과 관련되어 있었을 것이지만,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이른 비>가 내리지 않았기 때문이다.(아홉째 달, 곧 오늘날의 11월에서 12월이라는 시점이다. 이 기간에는 이른비가 내리지 않는다.) 바룩은 이 기회를 사용하여 서기관 사반의 아들 <그마랴의 방>(10절)에서 예언의 말씀을 선포한다. 특히 <그마랴의 방>에서 말씀을 낭곡한 이유는 예레미야가 그마랴의 아버지 <사반>의 가족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는 점을 암시한다.(26:24, 39:14, 29:3, 왕햐22:3)
모든 고관들이 모인데서 바룩에 의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이 선포되었고, 그들은 그 말씀을 듣고 깜짝 놀라 서로 바라 보았다.(16절) 깜짝 놀랐다고 해서 그들이 지금까지 예레미야가 선포한 말씀을 하나도 들은 적이 없다는 표현은 아니다. 그보다는 주제별로 한데 모아둔 <예언의 말씀>이 있어서 그것을 그 당시 세계 정서를 배경으로 공식적으로 낭독하게 되자, 이것이 그들에게 엄청난 도전으로 보이기도 하고, 최후의 통첩인 듯이 보이기도 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의 전달자들이 목숨을 잃지 않을까 염려하여 바룩과 예레미야에게 몸을 숨기라고 충고하였다.
그리고 <여후디>를 통해서 이 예언의 두루마리의 말씀을 여호야김 왕에게도 듣게 하였으나 여호야김 왕은 이 두루마리를 칼로 베어내 모두 불에 태웠다.(23절) 이에 하나님께서는 왕과 그 신하들에게 심판을 선포하셨고 바룩에게 그 말씀을 다시 기록하도록 하셨다.(31-32절)
적용: So What~! 하나님은 누구이신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갈그미스에서 <애굽>을 격퇴하고, 풍전등화와 같은 위기에 놓인 나라의 운명 앞에서 <여호야김> 왕은 분명 그의 아버지 <요시야> 왕과 같지는 않았다.(왕하 22-23장) 애굽의 바로(Pharaoh) <느고>는 요시야의 아들 <엘리아김>을 그의 아버지 요시야를 대신하여 유다의 왕으로 삼고 그 이름을 고쳐 <여호야김>이라고 하였다.(왕하23:34) 그런데 문제는 <애굽>은 가나안 땅에 대한 지배권을 계속 행사 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여호야김> 통치 4년에 <갈그미스 전투>에서 애굽의 왕 <느고>는 새로 나타난 세계 강대국 <바벨론>에게 전쟁에서 진다.(BC 605년, 렘46:2) 그래서 <여호야김>은 3년동안 <느부갓네살>에게 조공을 바친다. 그러다가 BC 601년 <느부갓네살>이 애굽을 원정하다가 실패하자 렘2:18,36절에 나오는 예언자 예레미야의 말을 듣지 않고, 다시 애굽 쪽으로 돌아섰다. 그의 이러한 외교술 때문에 <느부갓네살>은 자기 봉신들의 군대만을 보내어 <여호야김>을 치게 하였고, <여호야긴>이 왕이 될 때에 예루살렘을 정복하게 된다.(왕하24:6-7절)
예언자 예레미야가 <여호야김>에게 내린 평가는 열왕기하 23:35-36절과 예레미야 22:13-19절에 고스란히 확증된다.
예레미야 22:13-15절, "불의로 궁전을 짓고, 불법으로 누각을 쌓으며, 동족을 고용하고도, 품삯을 주지 않는 너에게 화가 미칠 것이다. '내가 살 집을 넓게 지어야지. 누각도 크게 만들어야지' 하면서, 집에 창문을 만들어 달고, 백향목 판자로 그 집을 단장하고, 붉은 색을 칠한다. 네가 남보다 백향목을 더 많이 써서, 집 짓기를 경쟁한다고 해서, 네가 더 좋은 왕이 될 수 있겠느냐? "
반면, 그의 아버지 <요시야> 왕에 대한 예레미야의 평가는 예레미야 22:15-16절, "네 아버지가 먹고 마시지 않았느냐? 법과 정의를 실천하지 않았느냐? 그 때에 그가 형통하였다. 그는 가난한 사람과 억압받는 사람의 사정을 헤아려서 처리해 주면서, 잘 살지 않았느냐? 바로 이것이 <나를 아는 것>이 아니겠느냐? 나 주의 말이다."
여호와를 아는 자와 그렇지 않는 자의 최후의 모습은 <여호야김>과 <요시야> 이 두 왕의 모습을 통해서 서로 비교 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 크리스챤들은 나라의 대통령과 정치 위정자들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는 정책과 결정을 내리도록 끊임없이 기도해야 한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