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te: 4-11-18 고난 가운데서 질문하고 의심하고 대드는 사람, 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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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년 4월 11일
- 3분 분량
One Verse: 욥1:1절, "우스라는 곳에 욥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는 흠이 없고 정직하였으며,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을 멀리하는 사람이었다."

<욥기>의 개관: 욥의 경건과 고난과 탄식(욥1-3장)
<욥기>는 하나의 교훈시이다. 저자는 지혜의 스승들 가운데 한 사람이며, 뛰어난 시적인 능력을 가진 사람이다. 기록 연대는 바벨론 포로 귀환 이후인 BC 4세기~3세기 경이다.
하지만 욥기의 배경은 창세기 시대의 연대와 배경을 같이 한다. 욥기1:1절의 <우스 땅>은 에돔 땅(애가4:21)과 같고, 등장 인물들은 모조리 창세기 족보에 나오는 에서의 자손들에서 그 이름을 찾아 볼 수가 있다.(창36:1-30)
모더니즘 Vs 포스트 모더니즘
특히 욥기는 현대 사회와 같은 포스트 모던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점이 매우 흥미롭다. 옛 지혜론의 전통에 대한 질문과 의심, 그리고 이러한 과정을 거쳐 새로운 대안으로서 대답을 제시하고자 했다.
[옛 지혜론]에 따르면, 사람의 운명은 자기 행동의 결과이다. 하나님의 질서를 지키는 영리한 사람은 잘 될 것이다. 사람이 불행에 빠진다면 이는 자기 탓으로 돌려야 한다. 이러한 지혜론의 계산법대로라면, 1-2장에서 묘사하는 욥의 운명을 겪는 사람은 실제로 아주 나쁜 사람이어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은 논리대로라면 불행에 빠지는 사람은 모두 악인이다는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옛 지혜론이 말하는 이러한 가르침은 포로기를 격었던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적어도 삶의 행복과 불행에 대한 삶의 수수께끼에 충분한 대답을 해줄 수 없었던 것이다. 바로 이러한 점이 <욥기>를 기록하게 된 동기였다. 포로기 이후의 당시 상황에 대한 도전으로 <개인>은 자신을 붙들어 주는 <공동체>를 더 이상 그전처럼 의지하지도 않고 계속 아무런 문제없이 공동체와 운명을 같이 하지도 않았다. 이 문제는 오늘날에 국민과 국가에 대한 개념을 규정하려고 하는 오늘날의 세태와도 비슷한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이러한 상황의 도전을 받아 <개인>은 자기가 경험한 현실에 비추어 [전통적인 교훈]과 [신앙관]을 훨씬 더 분화시켜 따져보게 되었다. 그리하여 [구체적으로 관찰한 바]와 [전해 내려온 가르침]이 서로 어울리지 않는 경우를 자주 경험하자 이제는 [전통적으로 전해 내려온 믿음]에 대한 비판적인 물음이 커지게 되었다.
그래서 <욥기>는 <전통적인 지혜론>에서 가르치는 교훈의 한계를 드러낸다. 욥의 네 친구는 욥이 불행하게 된 원인을 전통 지혜의 틀안에 맞추어 밝혀 주려고 하였지만, 하지만 욥의 변호를 통해서 그러한 전통적인 견해가 얼마나 공허한 가르침인지를 드러내 주고 있다. 이로써 <욥기>를 읽는 사람들에게 욥의 친구들이 잘못된 혐의를 품고 엉뚱한 식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점을 처음부터 분명하게 한다.
<욥기>의 저자가 '고난도 하나님의 시험'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을 말하려 했다면, 그는 이미 2장에서 욥의 믿음이 참되다는 것을 증명함으로써 목표에 다다랐을 것이다. 그러나 욥에게서 터져나오는 3장의 탄식과 더불어 욥의 운명이 지니는 의미를 둘러싼 씨름판이 비로소 벌어지게 된다.
욥은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뜻 아래 이제 막 모범적으로 또 무조건적으로 굴복했던 바를 철회하고,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면서 [옛 지혜론]의 전제에 따라 하나님께 자신의 <의로움>을 주장한다.
그러자 하나님은 거듭 새로워지고 강력해지는 이러한 도전에 대해서 천상에서 벌어진 내기라는 사건 배경을 드러내셔서 욥의 결백을 인정하시는 식으로 반응하시지 않고, 오히려 이렇게 대드는 욥에게 자제할 것을 요구하신다.(욥38-41장)
여기서 드러나는 긴장은 현재의 <욥기>가 하나의 통일된 시적인 구상을 토대로 생겨난 책이 아니라 오랜 시간과 과정을 거쳐서 이루어진 책이라고 생각할 때 비로소 해석이 풀린다. 이것은 히브리 본문에서도 <시문>과 <산문>으로 표현이 구별된다. -중략- 전통 지혜론에서 생각하는 <예상 가능한 하나님> 대신에 등장한 하나님은 욥이 절망 가운데에서 오로지 볼 수 있었던 예상 불가능한 하나님, 아무렇게나 하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창조주의 높은 지혜를 지닌 하나님이신데, 사람은 이 하나님을 피조 세계에서 인식함으로써 그가 사람을 어둡고 이해할 수없는 길로 이끄시더라도 이 하나님께 자신을 맡길 용기를 지니게 된다.
적용: So What~! 하나님은 누구이신가?
사람이 바라는 것들을 기준으로 하나님의 행동을 따질 수는 없다. 욥이 항의하는 근거가 되는 <인간적인 지혜>의 주장-곧 하나님의 계획을 사람이 꿰뚫어 볼 수 있어야 하고 또 하나님의 행위가 정의에 대한 사람의 생각에 들어 맞아야 한다는 주장은 깨뜨려져야 했다. 그렇지만 하나님이 몸소 말씀하시는 욥38-41장에서 창조주 하나님의 섭리는 하나님이 세상을 지혜로 정돈하셨고, 다스리신다는 점을 똑똑히 보여준다. 하나님의 선하심은 모든 피조물에 해당된다. 사람이 하나님의 선하심을 자기 운명에서 아직 깨닫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 정도는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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