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te: 7-5-18 예레미야 1:1-2:8절 너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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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년 7월 6일
- 2분 분량
One Verse: 렘1:5, "내가 너를 모태에서 짓기도 전에 너를 선택하고, 네가 태어나기도 전에 너를 거룩하게 구별해서, 뭇 민족에게 보낼 예언자로 세웠다."

예루살렘과 유다에 대한 심판의 말씀(렘1-25장): 예레미야의 <이의> 제기
예레미야가 예언자로 소명을 받는 내용이 <예레미야서> 첫부분에서 묘사한다. 5절 "내가 너를 알았고..."는 "내가 너를 선택하였고"라는 뜻이다.(사6장, 겔1-3장) 그런데 예레미야는 예언자 이사야와 에스겔이 소명을 즉시 받아들인 것과는 달리, 여러가지의 <이의>를 제기하는데, 그것이 하나님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모세(출4:10)와 솔로몬(왕상3:7)처럼 예레미야도 자기는 너무 어리다(아이)고 말할 줄 모른다고 이의를 제기한다. 그러나 하나님이 몸소 자기 일꾼들을 도우시기 때문에 어리다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는 임무를 맡는데 장애물로 통하지 않는다.(딤전4:12)
7-8절 "그러나 주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아직 너무나 어리다고 말하지 말아라.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그에게로 가고, 내가 너에게 무슨 명을 내리든지 너는 그대로 말하여라. 너는 그런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말아라. 내가 늘 너와 함께 있으면서 보호해 주겠다. 나 주의 말이다."
예레미야가 봉사한 기간으로 판단해 보면, 그가 부르심을 입었을 땐 아마 25세 미만 정도의 나이였을 것으로 짐작이 된다. 이로 추정하여 볼 때, 아이라는 표현은 정말 어리다는 뜻으로 보기 보다는 앞서 말한 것과 같이 "여러가지의 이의를 제기"한 것으로 봄이 바람직하다.
적용: So What~! 하나님은 누구이신가? 하나님의 일을 함에 있어서 우리는 <이의>를 제기할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마치 사사기 6:13절에 나오는 기드온의 이야기처럼 말이다. 삿6:13절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오 나의 주여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면 어찌하여 이 모든 일이 우리에게 일어났나이까 또 우리 조상들이 일찍이 우리에게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애굽에서 올라오게 하신 것이 아니냐 한 그 모든 이적이 어디 있나이까 이제 여호와께서 우리를 버리사 미디안의 손에 우리를 넘겨 주셨나이다 하니"
기드온의 대답은 마치 하나님께 <이의>를 제기한 것과 같았다. "저와 함께 계신다고요?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면 어째서 우리에게 이 모든 일이 일어났습니까? 우리 부모와 조상들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집트에서 구해 내지 않으셨느냐?'며 우리에게 말하던 그 모든 기적은 다 어디로 갔습니까? 이제 하나님은 우리와 아무 상관이 없는 분이십니다. 우리를 이렇게 미디안의 손에 넘긴 것도 그분이십니다."
이렇게 기드온이 조리있게 주장을 제시하는 것을 보면 아마도 이전부터 이스라엘의 고통을 보면서 하나님께 대해 화가 나 있는 모습이 엿보인다. 그런데 기드온은 이 모든 고통이 이스라엘의 범죄로 인한 것이라는 사실은 모르고 있었다. 나중에 보면 기드온의 아버지 집에도 바알과 아세라의 제단이 있거든요.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고 있지 않으면서도 그에 대한 인식은 없고 하나님만 원망하고 있는 셈입니다.
예레미야 조차도 사람에 대한 <두려움>을 가진 나머지 자신의 부르심에 대한 이의를 하나님께 제기하게 된 것이다.(렘1:8절 "그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라") 지금 내가 무엇으로 인하여 두려워 떨고 있지는 않는가?
그렇다면 아래의 이사야의 말씀은 우리 마음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위로의 말씀이다. 이사야 51:12절 "너는 어떠한 자이기에 죽을 사람을 <두려워>하며 풀 같이 될 사람의 아들을 <두려워>하느냐"
어떠한 자이기에라는 히브리어 표현의 뜻은 <네게 무슨 일이냐>, <어찌하여 그러느냐>라는 의미이다. 사랑하는 자녀가 무서워 떨 때에 <왜 그래>라고 말씀하시는 것과 같다.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의 능력을 의심하고 불안해서 어쩔 줄 몰라할 이유가 전혀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모든 상황과 여건 속에서 건저내 주시고, 구원하실 만한 능력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자기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신다. 이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우리가 받게 되는 위로의 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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